브랜드전략3 [Vol.12] 완벽한 새것 대신, 낡아가는 시간을 파는 메종들 패션 위크의 소음 너머, 가죽 냄새가 짙게 배어있던 마베프(Marbeuf)의 아틀리에 파리 남성 패션 위크 주간이면, 업무상 촬영을 위해 샹젤리제 뒷골목 마베프(Marbeuf) 거리에 자리한 비스포크 워크샵을 자주 찾곤 했어요. 세상에 단 하나뿐인 구두를 짓는 비스포크 공방이지만, 실은 그곳의 중요한 일상 중 하나가 바로 전 세계 고객들이 보내온 구두를 매만지는 수선과 리페어였습니다. 방금 상자에서 꺼낸 티 없이 맑은 쇼룸의 신제품들 틈에서, 주인의 걸음걸이에 맞춰 깊게 주름지고 손때가 묻어 본래의 색보다 짙어진 낡은 구두들이 유독 시선을 강하게 잡아끌었죠. 장인이 무릎 위에 그 구두를 얹고 묵묵히 흠집을 매만지며 솔질을 시작하는 순간, 그곳은 제품을 파는 매장이 아니라 한 사람의 흘러간 시간이 하우스의.. 2026. 10. 8. [Vol.11] 스마트폰 너머, 럭셔리가 종이의 무게를 택한 순간 초 단위로 쏟아지는 디지털 피로감 속에서, 책을 펼쳐 드는 '시간의 여유' 아이들의 손을 잡고 스타필드 코엑스의 별마당 도서관 한가운데 섰던 날이 생각나요. 천장까지 닿을 듯 거대하게 솟아오른 책장과 수만 권의 책들에 압도되기도 했지만, 정작 제 발걸음을 멈추게 만든 건 그 공간을 채우고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스마트폰 액정에서 잠시 눈을 떼고, 책장을 천천히 넘기며 나란히 앉아있던 사람들의 모습. 쪼개진 초 단위의 자극을 벗어나, 잉크로 인쇄된 종이의 질감 속에 온전히 자신의 시간을 머물게 하는 그 풍경을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스쳤어요. '아, 어쩌면 저런 멈춤과 쉼이야말로 지금 시대가 누릴 수 있는 가장 순도 높은 럭셔리가 아닐까.'알고리즘이 채워줄 수 없는 안목, 메종이 서점을 여는 이유최근 글.. 2026. 9. 24. [Vol.9] 정답을 찾는 알고리즘, 질문을 던지는 마케터 데이터가 예측할 수 없는 '나만의 확신'이 만드는 차이 파리 본사에서 전달되는 시즌 캠페인 가이드라인과 이런저런 마케팅 지표들을 마주할 때마다, 문득 뷰티 브랜드 매니저로 첫발을 내디뎠던 수년 전의 기억이 스쳐요. 뷰티 브랜드 매니저 시절, 삼성 빅스비 초창기에 가상 메이크업 협업을 밀어붙였던 때가 있었습니다. 기술은 서툴렀고 내부의 반대와 반응은 미지근했지만, 그때 뼈저리게 배운 게 하나 있어요. 기술의 빈틈을 메우고 판을 움직이는 건 결국 마케터의 무모할 정도의 직관이라는 것. AI는 수만 건의 데이터를 조합해 가장 '안전하고 효율적인 정답'을 제안하지만, 하이엔드 럭셔리는 숫자가 감히 예측할 수 없는 파격을 창조해야 하니까요. 모두가 수치와 안전한 길을 말할 때, 1%의 확신으로 브랜드의 고유성을 .. 2026. 8. 27. 이전 1 다음